호계역
호계역은 철길 한 번만 건너면 바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의 입구에서 타는 곳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 그런 작은 기차역이다.
역의 크기도 작고, 타는 곳도 1번, 2번뿐이지만, 역을 이용하는 이용객의 수는 적지 않았다.
1922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호계역은 2021년 12월 27일 운행을 종료하여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00년의 역사 호계역 폐역에 대한 나의 이야기
호계역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쪼꼬미 시절부터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내가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기차역이다.
호계역이 위치한 울산 북구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울산 북구에서 보낸 나는, 어릴 때부터 타지역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친구들과 부산, 경주, 대구 등으로 놀러 가기 위해 호계역을 자주 이용했었다. 그리고 대학을 부산으로 가게 되면서 2주에 한 번씩 기차를 이용하여 울산-부산을 오고 갔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후에는 대학을 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타지역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취업 면접을 보러 갈 때,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여행을 갈 때 등 운전을 하지 않는 나에게 호계역은 여전히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나를 그것들과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 호계역에 대한 추억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의 추억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어린시절 할머니께서 호계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전역까지 가서 부전시장에서 장사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또 부산에 살고 있던 어머니와 울산에 살고 있던 아버지가 만나 연애를 하고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도 호계역이 큰 역할을 했었다.
대학을 다닐때에는 호계역이 보이면 항상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가족들이 호계역으로 마중을 나와있을때면 나는 호계역에서부터 부산에서는 항상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싹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동안 서로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면서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길이 우리에게는 너무 반갑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호계역에는 나만의 추억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추억도 함께 있다.
예전에는 오랜시간 사용해오던 낡은 물건이 고장 나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크게 아쉬워하는 어른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은 아쉽지만 시원한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더 좋은 기능을 가진 물건으로 바꾸면 좋은 것이 아닐까? 그만큼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오히려 뿌듯하고 만족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호계역 폐역이라는 현실이 나에게 다가온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부분의 추억들이 도려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쌓아온 추억들의 시작점에는 호계역이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욱 그랬다.
이제 나도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좋아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일까?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호계역은 나에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집, 자취방과 같이 오로지 나만의 공간에 대해서만 느낄 줄 알았던 감정을 나는 호계역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호계역을 이전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들렸다. 그 당시에는 "호계역이 폐역되면 기차 타기 불편하니깐 대학 졸업까지만 버텨줘!"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호계역이라는 장소가 이렇게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공허함과 허전함을 느낄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작별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제 나는 기차를 타려면 북울산역을 이용해야 한다. 북울산역이 운영된지는 4개월이 넘어가지만 나는 북울산역을 이용한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아직 내 마음이 호계역을 보내주지 못한 이유가 컸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타지역으로 가야 할 상황에는 기차가 더욱 시간이 적게 걸린다 하더라도 굳이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첫 시작은 운행이 종료되기 며칠 전 갑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보내는 친구를 만나듯 급하게 호계역을 보러 갔다가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폐역되기 직전의 호계역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 4개월이 지난 지금의 생각과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남겨두고 싶었다. 여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다 쏟아놓고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없고, 북울산역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도 전혀 없다. 그냥 호계역이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앞서 언급한 글을 쓰는 이유는 기차를 타지 않을 거면서 급하게 기차역으로 달려가 직접 보고, 사진 찍은 마음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호계역을 이용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았는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7년 내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없었을 아버지의 어린시절부터 생각하게 만들어 줬다. 호계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의 삶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을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호계역은 나에게 있어서 '기차역' 그 이상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나는 것을 보면..
그동안 고마웠어, 호계역아!
덕분에 나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었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추억을 쌓았고, 여러 인연들을 만났으며,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할 수 있었고,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도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어. :)
나에게 행복한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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